동네의 10년후, 100년후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예술기획연구소 Art-Cluster 별의별
#기업탐방
2018-11-23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근대의 유적들이란 누가 선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간다는 사실이다. 유적에는 과거의 오래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편적으로 역사적 가치로 인식되는 가까운 과거들도 포함된다. 그것은 시간의 길이로 재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기억의 무게로 결정하는 것이다."

- 건축가 정기용의 '사람 건축 도시' 중에서




지역에서 사람들의 유출이 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공간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결국 그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도 함께 사라지거나 잊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공간이 사라지게 되면 공간과 함께 얽혀있는 시간과 추억, 역사가 함께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과 삶 속에서 밀려나는 공간을 채울 방법은 거대 자본이 들어오는 방법 외에는 없는 걸까요? 지금부터 만나볼 분은 비어가는 공간들을 채우면서 도시의 10년 후, 100년 후를 상상한다고 합니다. ‘예술기획연구소 Art-Cluster 별의별’의 고은설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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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은 어떤 곳이죠?

지역 도시의 사람들의 일상문화와 공연, 강연, 살롱 등을 건축과 도시재생에 접목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도시와 공간을 남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 도시재생에 감수성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별의별 고은설 대표

원래 전주가 고향이세요?

네. 스무 살 무렵 전주를 떠났다가 서른 살이 넘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림짐작이지만, 돌아오셨을 때 받으셨던 느낌 때문에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되신 건가요?

충격이 좀 있었죠. 돌아와서 목격한 것이 가난한 동네와 부자 동네의 격차가 심각하게 커진 모습이었어요. 신시가지와 신도시로의 확장으로 인해 구도심은 공동화되고 불편해지고…. 어떤 동네는 ‘못 사는’ 동네로 낙인찍혀서 그곳의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는 것조차 꺼리는 모습을 고향에 와서 보게 될 거라고는 보통 상상하지 못하니까요.


지역 도시들의 공동화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런 충격이 어떻게 사업까지 연결이 된 건가요?

동네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사는 노송동은 1960, 70년대에 형성된 저층 주거지입니다. 그중에서 문화촌이라는 곳은 동네에서 부촌이라 저마다 마당이 딸린 잘 지어진 집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중년을 넘기신 어르신들이 많으세요. 초고령화된 동네죠. 이런 분들이 혼자 생활하시기 힘들어지면 요양병원에 가시게 됩니다. 만일 돌아가시게 되면 집은 자녀분들에게 상속하게 됩니다.


전주시의 행정구역

음…. 그런데 아마 그 세대분들의 자녀분은 대부분 이미 자신들의 생업이 관련된 곳에서 자리를 잡으셨을 텐데요

맞아요. 그래서 상속을 받았다고 해도 실제로 와서 살기는 굉장히 힘들죠. 게다가 자신의 생업을 다른 지역에 와서 유지할 수 있는 분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상속받은 자녀분들이 임대로 주거나 하진 안 나요?

임대로 주려고 해도 옛날 집을 고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많아요. 하자가 있는 부분들을 해결해야 임대를 진행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바로 매매를 하기에는 내키지 않으니 부득이하게 집을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고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철봉집 공사때의 모습

그런 집들을 보고 나서 생각을 하게 된 거군요.

맞습니다. 그런 집을 이용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잘 사용하고 가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전공이 건축이었는데…. 물론 일은 문화기획을 하고 있지만, 타지에 있다가 와서 보게 되니 배웠던 것들을 통해서 이전에 고향에 살고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더라고요.


공간을 어떻게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은 어떤 식으로 결정하세요?

진행한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일단 제 생활에서 느껴지는 부족함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할까요? 저도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아이들이 좀 모일만한 공간이 없었어요. 집마다 비슷한 상황에서 육아로 힘들어하는데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놀이터를 만들어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나온 게 철봉집이군요.

네 철봉집은 아예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친구가 되고, 그럼 친구를 만나기 위해 놀이터에 다시 오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런 아이들을 따라서 엄마들이 모이고 그러다 보면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는 관계까지 이어지는 걸 경험했어요.


철봉집 오픈하우스 행사

철봉집에서 청년들과 만나고 있는 김승수 전주시장님

블로그에 철봉집의 처음부터 공사가 완공되는 과정을 정리해 놓으신 걸 보니 정말 많은 분이 함께 하셨더라고요.

뜻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실제 공사도 직접 도와주시기도 하고 진행되는 동안 제가 바쁘다 보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해서 마당에 잡초가 너무 많이 자랐을 때 그거 해결해주시러 오신 분도 계시고….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오래된 집을 고치는 건 쉽지가 않아요. 됐다 싶어서 장판을 걷어내니 물이 막 흥건하고 그 안에서 달팽이랑 지렁이가 살고. 하나를 해결하면 또 고쳐야 할 게 나오고 하니까 도움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까지 오셨더라고요?

하하하. 철봉집에 그네가 있는데 그게 저희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거예요. 목공에 소질이 있으셔서 정말 멋진 그네를 만들어주셨어요. 어머니도 처음에 제가 전주로 돌아왔을 때는 걱정이 많으셨는데 요즘 전주에서 하나하나 공간을 일구고 있는 걸 보시더니 대견하다고 많이 도와주세요.


고은설 대표의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그네

사철나무집 같은 경우는 에어비앤비에도 올라가서 사용되고 있군요.

사철나무집은 ‘전주에 나만의 집이 있다면 좋겠다’라는 컨셉을 잡았어요.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 테라스, 텃밭…. 도시에서 마냥 머릿속에서만 떠올려보던 생활을 이곳에 와서 경험할 수 있게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철나무집의 가족모임 사진

후기들 보면 여러 명이 갈수록 더 좋은 공간이라는 평가가 많아요. 호평일색이에요.

네 특히 거실에 설치된 벽난로를 많이 좋아해 주세요. 겨울에 가족들이 모여서 따뜻한 난로 앞에서 고구마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그런 모습들을 떠올리며 만든 공간이니만큼 그런 부분들에 공감하시는 것 같아요.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동네 같은 곳에서 지넨 기분이었다는 후기도 인상 깊었어요.


사철나무집의 핫플레이스, 거실 벽난로

만들어가는 공간들에 여러 문화행사나 공연행사들도 진행하시네요?

청년 문화 기획자들이나 공연팀들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도 열어요. ‘꿈꾸는 아지트’라고 해서 철봉집과 노송동의 기자촌 일대에서 아이들이 직접 공간을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종이로 놀기도 하고 나무와 빈 병 또는 폐자재 재활용 소재로 의자나 다양한 구조물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청년커뮤니티디자인스쿨

또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노송목공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별의별에서 지역의 유휴공간을 임대하여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로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제약이 시시때때로 생기게 되더군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동네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목공소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는 걸 알았어요. 이 공간이면 별의별이 앞으로 지속해서 활동하는 데 중요한 곳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진행했습니다.


활동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목공소는 기존의 공간과는 차이가 있나요?

목공소는 동네 어르신의 일자리의 공간과 함께 동네를 알릴 수 있는 라운지 성격의 까페가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네의 유휴공간과 빈집 문제를 위한 여러 기획자, 건축가, 시공자 등이 협업하는 곳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앞으로 별의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역의 지속적인 문화기반 구축을 위한 비영리단체 ‘예술기획연구소 Art-Cluster 별의별’과 지속 가능한 경제모델을 위한 ‘유한회사 별의별’의 두 축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지역에서 같은 뜻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크, 파트너십을 맺어가면서 전주가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활용할 다양한 방법들을 꾸준히 모색해 나가야죠.


별의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역 사람들의 웃음과 행복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비플러스의 투자자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시라는 공간이 어떤 하나의 가치를 위해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는 게 옳은 걸까요? 투기로 전락한 삶터, 멈추지 않는 아파트 건설 그렇게 공론화되지 못하는 우리의 공유지들에 관한 이야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의 도시를 남겨줘야 할까요? 그 아이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별의별을 하면서 10년 후, 100년 후의 전주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역 현장의 기획자, 예술가, 혁신가들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지역을 바꾸는 도전들에 함께 해 주세요.